[영화후기] 다큐멘터리 <The Cutting Edge : The Magic of Movie Editing>
마라톤 5등 상품은 김치냉장고다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에서 의사의 오진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주인공 동치성은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가 선택한 자살 방법은 바로마라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죽을 수 있다며 스스로 만족해하던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검은 화면에서 위의 대사가 비장한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이 영화를 처음보았던 날의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의 나는 이 영화를시시하고 허무맹랑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되어 우연한 기회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 여자>는 그 날 이후의 나에게 연애 교과서였다. 스무 번이 넘게 이영화를 다시 보며, 대사를 곱씹으며 본 적도 있었고, 주인공이뚫어져라 화면을 주시한 적도 있었다. 때로는 조연들의 대사에 집중했고,때로는 영화에 짤막하게 나오는 전봇대의 사랑이야기만 돌려본 적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The Cutting Edge : The Magic of Movie Editing>에서 편집자 크레이그맥케이(Craig MaKay)는 편집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며, 눈에 띄지 않을수록 잘된 편집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학교 4학년의 나는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아는 여자>를 다시 보았다.
이제껏 단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장면과 장면 사이의 짧은 틈, 대화와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의 포커싱, 듣지 못했던 작은 효과음까지 의도적으로 보살피려 노력하며 보았다. 그리고내가 생각했던 영화 속 명대사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예술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싱어송라이터 루시아는 자신의 음악의 곳곳에 장치들을 숨겨놓는 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처음 들을 때 보다, 여러 번 다시 들으며 더 많은 것들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보고 난 후, 한참을 헤매고 이해할 수 없었던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예술의 실체가 영화 <아는 여자>를 다시 보고, 또 루시아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조금은 더 명확해졌다.
지금의 나에게편집이란 ‘5등 상품’이다.완주를 기대하기는커녕 죽기 위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에서 나는 뜻 밖에 상품을 받은 것이다. 이는거액의 상금과 화려한 트로피를 받은 1등도 아니고, 가까스로 3등으로 통과해 단상에 오른 것도 아니다. 5등 상품은 뭔지도 모르고누가 주는 지도 모르고 그저 얼떨결에 받은, 새로운 발견의 재미라는 말이다.
ⓒ Peach in a Melody
(inamelody.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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